2019 11-12월호 혁신과 신뢰가 충돌할 때 로버트 헐리

혁신과 신뢰가 충돌할 때

신제품 출시를 서두르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로큰플레이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로버트 헐리

 

 

09년 아동 교육용 장난감 회사 피셔프라이스Fisher-Price가 요람처럼 생긴 휴대용 아기 흔들침대 로큰플레이Rock’n Play Sleeper를 출시했다. 당시 피셔프라이스와 모기업인 마텔Mattel은 하락 중인 회사 주가를 반등시켜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제품은 큰 성공을 거뒀다. 2019년 기준 피셔프라이스는 470만 개의 로큰플레이를 판매했다. 제품을 출시한 뒤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로큰플레이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성공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09년 이후 발생한 32건의 유아 사망사고가 피셔프라이스의 로큰플레이와 관련돼 있었다. 처음에 피셔프라이스는 제품을 구입한 부모들이 아기를 로큰플레이에 제대로 고정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규제당국이 이 제품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던 최초의 사망사고가 일어난 지 약 4년이 지난 2019 4 5, 피셔프라이스는 미국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와 함께 뒤집기를 할 수 있는 아기에게는 로큰플레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성명서도 냈다. “지난 90년 가까이 고객들은 우리가 자녀들에게 안전한 제품을 제공할 거라고 믿어왔습니다. 피셔프라이스와 전 직원은 고객 여러분의 가정에서 쓰는 제품을 제공하는 데 진심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여러분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소아과학회와 컨슈머리포트로 인해 더 큰 압박에 처한 피셔프라이스는 4 12, 마침내 전면적 리콜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UBS 애널리스트들은 마텔의 리콜조치 비용이 4000~6000만 달러일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이런 추산에 마텔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 상실과 관련된 장기적 비용까지 고려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해관계자들은 역량, 청렴성, 자선의식 등이 부족해서 신뢰성에 대한 기본적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에 배신감을 느낀다. 이런 배신감을 경험한 고객은 향후 회사의 행동에 대해서도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피셔프라이스의 유자녀 고객들은 회사가 과연 안전한 제품을 개발할 역량이 있는지, 안전 위험성에 대해 고객과 솔직하게 소통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을 가능성이 높다.

 

내 연구에 따르면, 피셔프라이스처럼 신뢰를 위반하는 사건은 보통 비도덕적인 직원이나 어쩌다 한 번 회사에 생긴 문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보다 회사 전반의 성장압박과 혁신압박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성장이 신뢰 위반을 불러오는 이유와 우리 회사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혁신이 위험해지는 시기를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는지,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조직표류organizational drift의 신호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조급한 혁신은 어떻게 발생할까?

 

기업이 성장과 위험관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면조급한 혁신manic innovation현상이 발생한다. 조급한 혁신은 혁신 프로세스의 제약을 느슨하게 만들고 진행속도를 높인다. 이와 함께 리스크를 이해관계자들에게 전가하거나 이해관계자들의 리스크를 증가시킨다. 로큰플레이 사건에서도 조급한 혁신의 징후를 찾아볼 수 있다. 피셔프라이스는 유아용품 시장을 조사하고,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부모들이 아기를 재워주는 기구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히트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아 수면에 혁신적 관점으로 접근하기는 했지만, 피셔프라이스는 중요한 안전 조치들을 무시했다. 미국소아과학회에서 정한 안전 수면 지침을 위반하고, 미국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에 요람 규격 적용을 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림과 글을 이용해 로큰플레이가 아기의 통잠을 보장해 주는 기계라고 마케팅했다. 유아 사망사고와 관련해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런 부실한 과정의 전말이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GM의 점화스위치 불량, 바클레이Barclay의 리보[1]조작 사건, 씨티은행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페이스북의 허위 뉴스 및 사생활 침해 사건 등 다른 많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조급한 혁신이 계속 허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리스크와 회사의 장기적 평판에 대해 우려했던 이들이 사내에서 체계적으로 소외됐기 때문이다.

 

 

혁신 프로세스에서 조직표류를 통제하는 방법

 

이런 소외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알려면 조직표류가 발생하는 과정부터 이해해야 한다. 조직표류는 정상적이고 적법한 수단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략, 문화, 프로세스, 거버넌스 등 조직의 여러 기능을 점진적이고 더디게 변화시키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다. 조직표류가 일어나면 리스크 관리 및 준법감시 담당자들은 신제품 출시 압박을 조절할 수 없다. 그 결과 상여금을 받을 수 있는 경영진 등 일부 이해관계자들만 이득을 보고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회사에서는 혁신가들이 법, 준법감시 시스템, 리스크 검토와 같은 통제기능의 개입으로부터 보호받는다. 그리고 혁신가들은 진행속도를 높일수록 보상을 받는다. 리스크 관리 및 준법감시 관리 기능이 뒷전으로 밀리면서 불량한 하위문화가 점점 회사 전반을 장악하게 된다. 이 하위문화는 목표달성을 찬양하고, 이에 동조하는 팀에게 보상을 주고, 리스크와 관련한 우려를 제기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비협조자들을 응징한다. 이처럼 지속 불가능한 프로세스가 붕괴하고 나서야 조직의 리더들은 비로소 회사가 얼마나 멀리 표류해 왔는지 깨닫게 된다.

 

자사의 조직표류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준법감시 전문가들과 함께 일할 때마다, 나는 이들에게 조직표류의 초기 징후에 대해 몇 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조직표류를 유발하는 조건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째는 조직표류가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공통적 징후에 관한 질문이다. 각 조직은 이 질문들을 활용해 잠재적으로 위험한 신뢰 위반을 피할 수 있다.(197페이지 표 참고)

 

이 질문들 가운데라고 대답한 항목이 있다 해도, 그걸 해결하기 위해 모든 혁신을 멈추라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조직 내 통제기능과 함께 혁신 프로세스의 궤도 이탈을 방지해야 한다. 혁신가와 리스크 관리자가 가능하면 빨리, 자주 협력하고 조직표류를 상시 경계해야 한다. 이렇게 협력하면 빠르지만 조급하지 않은 혁신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지만 이를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혁신가들과 통제기능담당자들(리스크관리자, 준법감시, 법률, 내부감사 등)은 사고방식이 다르고, 각자가 추구하는 인센티브가 자주 충돌한다. 통제기능 관리자들 중 일부는 자신의 업무가 리스크 방지로만 한정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안전하게 혁신을 촉진하는 방법을 찾아낼 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PwC가 내놓은 2018년 리스크 인 리뷰Risk in Review에 따르면, 혁신 사이클(선제적 리스크 수용범위 조정, 리스크 분담, 혁신가와의 긴밀한 공조, 지속적인 리스크 평가의 확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리스크 관리자가 리스크 노출을 관리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한편, 혁신가도 변해야 한다. 혁신가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들을, 성장의 발목을 잡는 부서들의 관료주의적 지시가 아니라 중요하고 타당한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혁신과 통제의 균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시각으로 성장과 리스크 중 어느 한쪽을 무시하지 않고 둘 사이의 긴장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보다 노련한 혁신가와 통제관리자가 필요하다. 일례로 구글의 한 고위 준법감시관리자의 말에 따르면, 구글은 혁신가와 준법감시관계자 간의 협업을 늘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혁신 프로세스 초기부터 잠재적 리스크를 해결하는 방법들을 실험하고 있다.

 

혁신이 잘되면 기업은 혁신과 기업의 명성을 지속시키기 위해 성장과 준법감시를 동시에 관리한다. 체이스은행이 모범 사례다. 체이스는 1990년대에 합성모기지 상품synthetic mortgage instruments을 만들기 위해 파생상품을 가장 먼저 실험한 최초의 금융기관 중 하나다. 씨티은행과 메릴린치가 2000년대 초반 이 상품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는 동안, 체이스는 혁신과 우수한 리스크 관리를 결합하는 느릿한 접근법을 택했다. 이 과정을 통해 체이스는 자사가 이 상품의 하방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노출을 제한하기로 결정하고, 신제품 및 프로세스의 성장과 리스크 및 안정성을 관리하는 통제 사이의 균형을 효과적으로 관리했다. 피셔프라이스가 이 방법을 따랐다면 지금의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1] RIBO, 영국 런던에서 우량은행들끼리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

 

 

 로버트 헐리(Robert Hurley)는 포드햄대 가벨리경영대학원 인간·조직리더십 교수이자 에티컬시스템(Ethical Systems.org) 협력위원이다. 저서로 < The Decision to Trust: How Leaders Create High-Trust Organizations >가 있다. 다수의 임원교육 프로그램을 이끌고, 전 세계에 고성과·고신뢰 조직을 구축하도록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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