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월호 성희롱 문화 뿌리뽑기 제니퍼 클라인(Jennifer Klein)

 

성희롱 문화 뿌리뽑기

성희롱은 일터에서 여성의 권력을 앗아간다. 이런 관행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제니퍼 클라인

 

 

 

 

든 일은 두 단어에서 시작됐다. 2017 10월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에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면나도 그랬다me too라고 답글을 달아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성폭행 생존자를 지원하기 위해 미투 운동을 시작한 지 10여 년 만에 수백만 명이 미투 해시태그(#MeToo)를 공유했고, 성희롱 이슈는 즉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여성들은 다른 두 단어로 화답했다. 타임스업Time’s up.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타임스업이라는 단체가 2018 1월 발족하기 전, 라틴계 여성 노동단체인 ‘Alianza Nacional de Campesinas’에 소속된 여성 농장근로자 70만 명이 이 이슈를 위해 나서준 여배우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서면으로 밝혔다. 이 두 단체는 재빨리 힘을 모았고, 성희롱을 당하고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거나 일터에서 안전, 평등, 존엄을 보장받기 위해 싸워온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도 운동에 합류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성희롱이문화, 지리, 인종, 종교, 정치, 일터의 경계를 초월하는 문제라고 역설했다.

 

성희롱은 여성의 권력 결핍이 낳은 결과이자, 그 원인이기도 하다. 권력 결핍은 농업계, 테크 업계 등 전 분야의 하급직 직원부터 고위임원까지 모든 직책의 여성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타임스업을 세운 이들, 그리고 성평등 관련 일에 종사해 온 나는 한 명 혹은 다수의 가해자를 응징한다고 해서 성희롱이 근절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차별, 임금 격차, 불평등한 돌봄 책임, 부정적 규범 및 고정관념 등 안전과 평등을 동시에 위협하는 장벽을 적극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성희롱 근절은 하나의 독립된 목표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성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타임스업은 창립 초기부터 모든 직종의 여성을 결집시켜 안전, 공정성, 존엄이 보장되는 일터를 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성희롱은 여성뿐만 아니라 기업의 앞길도 가로막는다

 

미 연방 고용평등기회위원회에 따르면, 미국 여성의 85%가 일터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지만 2006~2015년 사이에 제기된 85000여 건의 성희롱 혐의를 분석한 최근 결과를 보면, 성희롱 발생 빈도는 숙박·외식업계에서 가장 높았고 소매유통업, 제조업, 의료업, 사회복지업이 그 뒤를 이었다. 모두 여성, 그 중에서도 특히 비백인 여성 종사자 비율이 높은 업계다.

 

성희롱은 개인적인 고통과 함께 경제적인 피해도 유발한다. 일터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여성은 이직률이 여섯 배나 높다. 이런 사유로 이직하는 여성 대부분이 보수가 더 낮은 더 열악한 분야로 옮겨간다. 이직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들은 성희롱 피해 사실을 숨기지 않을 경우 감봉, 고용계약 종료 등 경제적 보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행은 해당 여성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성희롱을 당하는 직원이 한 명 생길 때마다 고용주는 22500달러의 생산성을 잃게 된다. 거기다 직원 이직에 따른 비용, 법무비, 기업평판 악화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 경제도 성희롱을 당한 후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경력이 정체되거나, 경력 개발을 시작조차 못하게 된 여성들이 지닌 엄청난 잠재력을 손해보게 된다.

 

성희롱은 그냥 백지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광범위한 차별과 편견에 뿌리를 두고 발생하는 문제다. 미국에서는 남성이 1달러를 벌 때마다 여성은 평균 80센트를 번다. 임금 데이터를 인종별로 나눠보면 임금격차는 더 크다.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백인 여성은 77센트를 버는 반면, 흑인 여성은 61센트, 원주민 여성은 58센트, 라틴계 여성은 53센트밖에 벌지 못한다. 저임금 일자리에는 여성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고, 고위임원직에는 남성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 여성들은 육아와 노인부양 등 돌봄 책임도 남성보다 더 많이 지고 있기 때문에 생활비를 벌거나 승진하는 데 지장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성희롱은 이처럼 다른 유형의 차별 및 불평등과도 깊이 얽혀 있다. 성희롱은 여성들이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우리는 성희롱 관련 법과 정책을 강화하고 시행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불평등이 만들어내고 불평등을 다시 조장하는 환경조건도 개선해야 한다. 성희롱 문제를 집중적으로 해결하려면 양성 동일 임금, 유급 가족휴가 및 유급 의료휴가(174페이지모든 직원에게 유급 육아휴가를참고), 저렴한 보육서비스, 임신에 근거한 차별 등 다른 이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함께 고위경영진 및 관리자 직무에서의 여성, 특히 비백인 여성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모든 직종의 여성들이 일터에서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남녀가 공정하게 경쟁하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

 

성희롱과 차별은 여성의 성공을 가로막는다. 불운의 사이클 속에서 남녀간 권력 불균형을 부추기고, 이로 인해 성희롱과 학대는 지속된다. 이 사이클을 끊어내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의제가 아니다. , 비즈니스 관행, 우리의 문화규범이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어떻게 사이클을 끊어낼 수 있을까?

 

법을 바꿔라. 성평등을 향한 진보는 20세기 동안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여성참정권 운동으로 촉발된 이 움직임은 교육 및 고용에 관한 성차별을 금지하고 성별에 근거한 임금차별을 불법화한 주요 법안들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미국 연방법은 1980년부터 성희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불법 성희롱의 기준과 처벌을 강화하고, 성희롱 소송을 제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법을 개선해야 한다. 벌써 상당한 진전이 나타나고 있다. 미투 해시태그(#)가 퍼져 나간 지 2년 만에 타임스업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친 뉴욕 주를 포함한 15개 주에서 성희롱 방지를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와 함께 최근의 진전을 기반으로 양성 동일 임금을 보장하고, 일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다른 제도들도 도입해야 한다. 49개 주에서 임금 평등 관련 조항이 명문화된 상태이며, 올해 들어 최소 여덟 개 주에서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새로운 법이 통과됐다. 미 하원에서는 초당적 지지로 공정임금법Paycheck Fairness Act이 통과됐다. 다만 상원 통과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여덟 개 주와 워싱턴DC는 유급 가족휴가법 및 의료휴가법을 제정했다. 현재 주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의 모멘텀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도 임금 평등 관련법을 강화하고 농장근로자, 유급 가사노동자, 독립 계약근로자 등 모든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확대해야 한다. 유급 가족휴가 및 의료휴가 관련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보육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임신 차별에 대한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즈니스 관행을 바꿔라. 민간 부문은 법 제정을 기다리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 몇몇 조직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회적 책임 이행을 기업의 의무 중 하나로 간주하는 기업 임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직장 내 성희롱 및 성불평등 근절도 포함된다. 안전과 평등을 촉진하는 사내 정책은 근로자와 여성뿐 아니라 기업 이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이미 노력 중인 기업이 있는 반면, 변화를 부추겨야 하는 기업도 있다. 협력과 외부압력이 모두 필요하다. 일례로 우리는 타임스업 법적대응기금을 통해 성희롱, 학대, 보복을 견뎌온 맥도날드 직원들을 위해 맥도날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지원했다. 그로부터 1년 뒤에도 상황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자, 타임스업은 맥도날드 경영진에게 매장 내 성희롱 및 보복 근절을 요구하는 공개 항의서에 시민 수천만 명과 옹호자 연합의 서명을 담아 발표했다. 얼마 전에는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운동선수들과 연대해서 스폰서 계약에 임신한 선수에 대한 차별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항의했다. 여론의 압박이 계속되자 나이키는 임신이나 육아로 인해 경기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선수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거나 후원금을 삭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다른 스포츠기업들도 이와 유사한 약속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연례 주주총회에 참석해 중위 임금 데이터를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임금 격차를 분석하고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위 임금 데이터 공개가 표준관행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기업은 성희롱 및 보복 방지를 위한 정책과 교육을 개선하고, 편견과 차별 문제를 해결하고, 경영진 내 성별 및 인종 다양성을 증진하고, 임금 격차를 없애고, 유급휴가와 보육 지원 등 가족 관련 사내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 규범을 바꿔라. 미투 운동의 폭발적인 확산은 문화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순간이었고, 성희롱과 학대에 대한 전례 없는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사람들을 행동에 나서게 했다. 하지만 안전, 공정, 존엄이 보장되는 일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깊이 뿌리 박힌 잘못된 사고방식과 행동을 바꿔야만 한다.

 

문화를 장기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애초에 성희롱과 성불평등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든 사회 규범을 총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 여성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린 시절에 깊이 각인된다. 강하고 똑똑한 남자아이들과 고분고분하고 섹시한 여자아이들 같은 고정관념은 소셜미디어, 뉴스 보도, 광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화된다. 이런 편견은 여성의 직업, 여성이 직장에서 받는 대우,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이 여성을 보고 반응하는 태도, 심지어는 가족들이 여성에게 갖는 기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고질적인 규범을 뚫고 들어가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영화와 TV 속 발화자를 바꿔서 전달되는 이야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타임스업의 초기 리더 중 한 명으로 유명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숀다 라임스는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여성 작가와 배우를 기용하고, 강인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성희롱과 임금 격차 등 다양한 성불평등 문제를 이야기에 녹여내고, 이런 직장 내 불평등이 여성의 기회와 권력을 어떻게 약화시키는지 그려낸다.

 

타임스업은 비백인 여성과 성소수자를 포함해 더 많은 여성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문화를 바꾸는 노력도 하고 있다. 전체 할리우드 영화의 4%만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타임스업은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에 18개월 안에 여성 감독의 장편영화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4% 챌린지4% Challenge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마존, 유니버설, 워너브라더스 등에서 120여 명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이 요청에 응답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 애넌버그 센터Annenberg Center의 분석에 따르면, 향후 18개월 동안 개봉하는 상위 100편의 영화 가운데 여성 감독 작품이 최소 12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18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숫자이고, 1980년 측정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애넌버그 센터의 과거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 감독들이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인종적·민족적 배경을 가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외된 집단의 구성원들을 스크린에 더 많이 등장시킨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넘어 사회의 태도도 변해야 한다. 일례로 미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7월에 네 번째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에서 양성 동일 임금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언급한 것을 계기로 미국에서 열띤 논쟁이 일었다. 여자 대표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뛰어난 성적을 거뒀는데도 남자 축구팀보다 더 적은 보수를 받는다. 여자 축구선수들과 모든 업계의 여성들에게 동일 임금을 보장해 달라는 이들의 요구로 충격적인 성불평등 실태가 재조명되고 동일 임금 요구 투쟁이 시작됐다. 타임스업과 미국 여자축구대표선수협회는 임금 격차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그 해결방안을 강조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런 활동은 효과를 내고 있다. 사회의 태도가 바뀌고 있으며, 문화규범의 대대적인 변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동성결혼에 대한 여론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전략적이고 조직화된 캠페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2001년만 해도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 의견이 주류를 이뤘지만 2017년에 이르자 여론이 정반대로 뒤집혔다.

 

성희롱을 근절하고 모든 일터에서 여성에게 안전, 공정, 존엄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노력을 배가해야 할 때다. 우리가 이 기회를 제대로 포착한다면 기업리더, 활동가, 문화창작자, 정책입안자들의 힘을 모을 수 있다. 성희롱을 사전에 차단하고 성희롱 피해 여성들을 제대로 보호해줄 수 있다. 여성이 일터에서 동등한 대우와 성공 기회를 얻는 데 방해가 되는 장벽들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일터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여성의 권력과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제니퍼 클라인(Jennifer Klein)은 타임스업 최고전략정책책임자다. 오바마 정부 시절 미 국무부와 클린턴 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성평등 이슈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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