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월호 여전히 식지 않은 인도 화폐개혁의 여운 속에서 바스카르 차크라보르티(Bhaskar Chakravorti)

emerging markets

여전히 식지 않은 인도 화폐개혁의 여운 속에서

바스카르 차크라보르티

 

인도가 정말 통화정책과 정치개혁의 기적을 달성한 것일까?

 

 

26_1

 

지금까지 단행된 화폐개혁, 보다 정확한 이름으로 폐화demonetization 정책의 전개를 한번 보자. 2016 11, 민주주의 국가로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인도 정부는 부패 근절을 목표로 하는 고강도 경제 개입을 단행했다. 리스크도 컸지만 기대 효과도 그만큼 컸다. 정책에 따라 고액권 화폐 2(500루피, 1000루피)의 사용이 중지되었고, 단 하룻밤 사이 시중 현금의 86%가 무효화됐다. 경제활동의 90%를 현금에 의존했던 만큼 일대 혼란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당시에도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는데, 정책 자체도 부실했고 집행 과정은 그보다 더 부실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 의외로 분위기는 잠잠하다. 부정부패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는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최근 주 의회 중간선거 결과는 임기 중반을 맞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는 전례 없는 화폐개혁 정책에 대한 사실상 국민투표의 성격을 지닌 선거였다.

 

흥겨운 노래와 춤, 화려한 의상 교체만 없었을 뿐 인도의 이번 화폐개혁은 흡사 판타지로 유명한 발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인도의 화폐개혁 실험은 현금, 부정부패, 데이터, 그리고 디지털경제에 대한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지고 있다. 그 여운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새로운 시사점을 생각해 보자.

 

 

화폐개혁은 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최고의 방책이 아니다

 

극단적인 이번 인도 화폐개혁의 원래 목적은 불법적으로 취득했거나 탈세를 위해 신고하지 않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소위지하경제의 양성화였다. 지하경제는 인도 경제의 심각한 장애물이었다. 최근 공개된 통계자료를 보면 2013년 인도의 전체 인구 중 소득세를 정상 납부한 비율은 1%밖에 되지 않는다. 화폐개혁 정책 시행이 예고된 후 2016 12 30일까지 500루피와 1000루피 화폐를 은행에 예금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이 기간 안에 예치하지 않은 두 종류의 화폐는 통용이 전면 금지됐다.

 

블룸버그가 발행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마감기한인 12 30일까지 각 은행에 예치된 총액은 약 149700억 루피( 2200억 달러)로 추산되며, 이는 500루피 및 1000루피 화폐의 총 유통량인 154000억 루피의 97%에 달한다. 예치된 화폐의 실제 가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당국의 공식 확인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유통 화폐의 대부분이 회수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치된 화폐를 정리하고 진위를 확인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직까지 세무신고를 하지 않은 자산 중 상당수는 은행에 예치하지 않을 것이고, 그동안 돈을 숨겨온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많은 지하경제 참여자들이 결국 자산을 날리고 말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회수율이 나왔다. 이렇게 이유 중 하나는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이 온갖 기발한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합법적이건 아니건 이들은 현금을 은행에 예치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냈다.

 

전 미국 재무장관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가 말한 대로 사용 빈도가 낮은 고액권 지폐의 유통을 중단시키는 것은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인도 정부가 유통을 금지시킨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는 인도의 전체 화폐 유통량의 86%를 차지한다. 이처럼 널리 사용되던 화폐의 유통을 중단했으니 빈곤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막대한 사회경제적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부패한 고액자산가가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현찰로 보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은닉자산의 극히 일부만이 현금일 뿐이다. 소득세 조사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인도인들의 은닉자산 적발이 최대 규모로 이루어진 시기는 2015~2016년 사이인데, 여기서 현금 비중은 고작 6%였고 나머지는 사업체 지분, 주식, 부동산, 귀금속, 또는베나미benami로 불리는 차명 구입 자산의 형태로 존재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화폐개혁이 위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처럼 갑작스럽게 정부가 화폐 소유자들에게 진 공공채무를 무효화하면 아무런 대체재나 보상 없이 개인의 동산(動産)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박탈해가는 셈이라고 성토한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면 채찍과 당근을 내밀며 장기적으로 문화적, 제도적, 행동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급진적인 화폐개혁과 같은 이른바원샷식 정책은 효과가 없다.

 

 

전자결제 분야에서 나타난 혁신과 창의성

 

화폐개혁으로 의외의 승자로 떠오른 것은 모바일 월렛, 즉 전자결제 사업자들이다. 사용자가 17000만 명에 달하는 선도업체 페이팀Paytm의 경우 화폐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트래픽이 435%, 거래 건수와 액수가 총 250%씩 증가했다. 2016년 초를 기준으로 인도 국민 전체의 약 17%가 스마트폰 사용자임을 감안하면 전자지갑 서비스에 대한 수요 폭증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 정부도 혁신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인도 정부가 공식 지원하는 전자결제 어플리케이션 BHIM을 활용해 계좌 이체가 더 편리해졌고, 이제 BHIM 사용자들은 12자리 숫자로 된 고유의 아드하르Aadhaar코드만 입력하면 돈을 보낼 수 있다. 이렇게 손쉽게 사용 가능한 BHIM은 기존 휴대전화까지 지원하므로 굳이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폰도 필요 없다. 다시 말해 BHIM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으로 개발된 것이며,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거대한 인도시장 전체로 확장해 나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또한 정부는 주유소, 병원,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금융 거래에 전자결제 시스템 적용을 의무화하고, 4500달러 이상의 현금 거래는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하도록 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인도철도공사는 온라인으로 예약하는 승차권에 서비스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을 예정이며, POS 기기와 지문인식기로 결제하는 승차권에 대해서도 정부가 단계적으로 세금을 면제하기로 했다.

 

정책 자체에 존재하는 몇 가지 범실을 빼고 보면 위와 같은 조치들은 전자결제 분야와 사용자 친화적 기술 생태계에 분명한 활력소 역할을 했다.

 

 

데이터의 품질과 맥락은 여전히, 그리고 대단히 중요하다

 

인도중앙통계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16 4분기 인도 경제는 7%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화폐개혁 전에 통계청이 발표했던 예측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화폐개혁 이후 소규모 제조공장과 영세기업의 대규모 폐업, 임금 체불, 각종 건축사업 지연 등의 사태가 발생했지만 수치상으로 경제의 흐름에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잘 뜯어보면 통계청이 제시한 자료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추정치가 작성된 시점과 실제 데이터를 수집한 시점이 다르다. 대부분의 통계 추정이 과거 자료를 활용해 개발된 모델에 기반했기 때문에, 화폐개혁과 같이 변칙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둘째, 비공식 부문이 경제통계 조사 결과를 왜곡한다. 비공식 부문이 인도 총생산의 45%, 고용의 94%를 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추정 통계도 있지만 비공식 부문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자료는 얻기가 어렵다. 거기다 거래를 주로 현금에 의존하고 있어서 화폐개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비공식 부문이다.

 

마지막으로 인도에는 신뢰할 만한 전국 단위 소비자 판매 통계자료가 없다. 그래서 통계학자들은 가계소비 추정을 위해 생산자 쪽의 수치를 차용한다. 하지만 이런 수치들은 상장사들의 자료만 포함하고 있어서 화폐개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미등록 회사와 비공식 제조업자들의 수치 비율은 훨씬 축소 반영된다.

 

2016 4분기의 데이터를 살펴보자. 상업용 자동차 생산량, 철도 운송, 서비스 세금 수입, 가전제품 매출이 감소해서 예상 GDP 성장률도 7%에서 6.4%로 하향 조정됐다. 또한 다음의 사실도 살펴보자.

 

• 변화가 빠른 소비재 산업에서 1~2%의 매출 감소가 있었다. 소비재 분야의 양대 선도기업인 힌두스탄유니레버와

네슬레에서 매출과 순이익의 급격한 감소가 나타났다. BW Disrupt에 따르면 힌두스탄 유니레버의 매출 규모는 4% 감소했다.

 

• 우기에 많은 비가 내려 현금을 비축한 농가가 많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트랙터 판매가 크게 늘지 않았다.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직전 분기에 28% 증가했던 트랙터 판매 매출 규모가 10~12월 사이에는 고작 18% 증가했다.

 

• 승용차 판매 연간성장률도 직전 분기에는 18%였지만 4분기에는 1% 성장에 그쳤다. 스크롤인Scroll.in의 자료에 따르면 인도 최대의 완성차 제조사인 마루티는 3분기 승용차 판매가 18.4% 증가했지만 4분기는 3.5%에 그쳤다.

 

• 스쿠터 등과 같은 이륜차의 경우 2016 12월의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22% 감소했다. 비즈니스 스탠더드에 따르면 이와 같은 감소는 1997년 이후 가장 큰 월간 감소율이다.

 

현금성 거래는 대단히 세분화되어 있고 정확한 데이터 수집이 불가능하므로, 공식적인 국가 경제 통계에는 제대로 잡히지 않은 현실 경제의 모습이 분명히 존재했다.

 

 

‘거대 담론의 울림은 계속 커진다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인도 국민은 통화예금 비율, 현금성 불법자산 비율, 복잡한 GDP 성장률 산출 공식 등과 같은 현학적인 기준으로 모디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지는 않았다. 화폐개혁 때문에 인도 국민 전체는 어떤 형태로든 혼란과 불편함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관통한 것은 정부가 서민의 편에서 부정부패와 단호하게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가 읽혔기 때문이다.

 

 

화폐개혁 정책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모디 총리가 직접 대답한 바 있다. 웃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주에서 선거운동을 할 때였다. “폐화 조치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매일 하버드 경제학자들이 뭐라고 얘기했는지 떠들고 있지만, 그 반대쪽에는 경제 발전을 위해 묵묵히 일만 하는 가난한 아버지의 아들이 있습니다.”

 

3 11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정당은 웃타르프라데시 주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는 첨단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를 자축하고 있지만, 어쩌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정작거대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민심의 향방을 가르는 거대 담론의 승리는 영국, 미국, 그리고 이제 인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정치인이 대중의 생각을 대변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줄수록 객관적 데이터나 역사적 사실 등 팩트에 기반한 요소들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점차 줄어드는 양상이다.

 

정리하자면담론이 데이터를 이긴다가 인도 화폐개혁 사태의 시사점인데, 이 정도면 아마 발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소재로도 충분해 보인다.

 

 

번역: 이우경 / 에디팅: 석정훈

 

바스카르 차크라보르티는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앤드 파이낸스 선임학과장이며, 플레처스쿨 산하 비즈니스 인 글로벌 컨텍스트 연구소의 창립이사다. 대표 저서로는 <빠른 변화의 느린 속도>가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2017 6월호 다른 아티클 보기

목록보기

무료 열람 가능 아티클 수 0/1 회원가입 | 서비스상품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