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6월(합본호) 핵심은 프레임 워크가 아니다 칼 슈람(Carl Schra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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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프레임워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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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기로에 서 있는 기업가라고 상상해 보자. 그동안 새로운 플랫폼을 열심히 개발했고,이제 시장에 내놓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사회 일원인 벤처투자자가 적어도 3개월은 더 제품 개발을 해야 한다면서, 확실한 시장 진출 전략을 정하고 이 전략을 실행할 계획을 가져와야만 추가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투자자의 조언대로 해야 할까? 당신의 회사와 비슷한 벤처기업들의 실적을 추적한 경험적 데이터가 없다면, 어떤 방법이 더 적합한지 알 수 없다.

 

에릭 리스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   린 스타트업   >에서 독자들에게, 사업계획서를 쓰기보다는 고객들과 제품을 개발할 때 성공 확률이 더 높다고 말한다. 리스의 주장은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와 밥 도프Bob Dorf <   기업 창업가 매뉴얼   >에서 제시한 논지를 뒷받침한다. 블랭크와 도프는 이 책에서 모든 스타트업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과업은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일이며, 이 과정은 미리 세워 둔 전략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전적으로 경험에 바탕을 둔 학습 프로세스라고 주장한다. <   린 스타트업   > <   기업 창업가 매뉴얼   > 모두 기업가들에게최소 요건 제품minimally viable product을 개발해서 되도록 빨리 고객 피드백을 얻으라고 조언한다.

 

조슈아 건즈, 에린 스콧, 스콧 스턴은 리스, 블랭크, 도프가 조언한 방식이 대개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채택할 수 있는 옵션을 평가하는 전략 프레임워크가 없으면, 일관성 없는 전략적 선택을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부터 살펴보자.

 

기업가정신 업계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었다. 경영학자들은 기업이 설립되는 과정에는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학생을 대형 금융사, 제조업체, 운수회사, 소비재기업에 적합한 인재로 키우는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나타났다. 점점 많은 MBA 학생이 이들의 성공을 따르는 법을 간절히 배우고 싶어했고, 사람들은 이런 가르침을 기업가정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업가(창업가)’라는 단어가 일반인들 사이로 퍼져 나가던 시기였다.

 

전략과 재무 과목(당시 벤처캐피털이라는 새로운 투자 유형이 등장했다)의 내용을 끌어와 탄생한 기업가정신 커리큘럼은, 가상의 스타트업을 상정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참신한 교육실습을 중심으로 구체화됐다. 뒤이어 잠재투자자들이 적용하는 기준을 반영해, 공통 교육 요소를 담은 양식이 등장했다. 대학들은 새로운 지도 방법을 찾아냈고, 이를 두고 일종의 경쟁도 벌였다.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대는 해마다 300만 달러 이상의 상금을 건 사업계획서 작성대회를 대대적으로 열고 있다.

 

사업계획서 작성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쉽게 이해가 된다. 본래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일어날 일에 따르는 위험을 낮추고 싶어한다. 이런 충동은 프로젝트의 복잡성과 잠재적 실패 비용이 늘어날수록 강해진다. 전략과 실행 계획을 개발하면 사업이 더 예측 가능해지고 확실성이 높아지는 듯 보인다. 게다가 한 사람이 이리저리 시도한 끝에 성공에 이르렀다고 해서, 같은 방법을 신생 벤처기업 대부분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물론 린 스타트업 운동의 영감을 제공한 소프트웨어기업과 기술기업들이 많은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이런 기업의 비중은 전체 스타트업의 3%에 지나지 않는다. 스케이트보드를 판매하는 소매기업을 세우려면 매장이나 온라인 판매를 위한 디지털 인프라, 설비, 재고, 판매인력, 광고가 필요하다. 벤처기업에 전략과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계획이 안고 있는 문제

 

수많은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기업가정신 교육과정에는 심각한 결함을 가진 추정이 깔려 있다. 바로 창업 프로세스에 균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추정이다. 이 논리는 서술할 수 있고, 그대로 따른다면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추정을 제대로 시험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비록 기업사학자들이 현존하는 많은 대기업의 사업 초창기 모습을 기술해 왔지만, 경영학자들이 신생기업의 탄생에 관한 종단자료longitudinal data를 개발하거나, 스타트업의 공통된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거나, 본받을 만한 기업가적 행동 유형을 논의한 적은 없었다. 겨우 최근에서야 경제학자들이 이런 작업에 손대기 시작했다.

 

그 대신 기업가정신 학자들은 성공한 스타트업 사례에 의존한다. 하지만 보통 이런 사례는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기업가들이 대개 일기를 쓰거나 기업의 역사를 실시간으로 차근차근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증언과 다른 편견이 가득한 사후 진술에 기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실패한 스타트업은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고, 통념과 달리 한 번 실패한 기업가가 그 다음 도전에서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믿을 만한 경험적 방법으로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스타트업의 과학을 정립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를 토대로 알 수 있는 사실은, 경영대학원의 통설이 아무리 좋게 봐도 미심쩍다는 것이다. 알코아, 디즈니, GE, IBM, 펩시코, P&G, 메이시, 유나이티드항공, 월마트 등 전통적으로 MBA 학생들이 지원하고 싶어하는 기업 중 어디도 사전 계획에 따라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오늘날 기업가들이 주목하는 애플, 시스코, 페이스북, 구글, 나이키, 우버, 야후 등 상징적인 젊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앤서니 K. Anthony K. Tjan과 줄리언 랭Julian Lange이 동료들과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계획은 스타트업의 성공 여부에 어떤 통계학적 차이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사업계획서 작성대회 우승자 가운데 단 몇 명만이 실제로 창업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세 번의 사업계획서 작성대회에서 총 125000달러의 상금을 받고 무료로 MBA 과정을 밟을 기회까지 얻은 한 학생은, 자신이 진짜 사업을 시작한다면 사업계획서 작성사업을 할 것 같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디지털벤처와 달리진짜벤처가 그저 사업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동의하지 않는다. 건즈, 스콧, 스턴은스타트업을 위한 전략에서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샤이 아가시의 베터플레이스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테슬라가 더신중하고 단계적으로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테슬라의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엄청난 자본을 요하는, 위험성이 상당히 높은팻 스타트업[3]이었다. 이런 기업의 제품은 점진적 시험을 할 수 없다. 공학기술에 대한 엄청난 투자와 별개로 머스크는 전기차에 반드시 필요한 충전소를 마련하기 위해 복잡한 공급망, 조립시설, 대리점망, 민관협력 파트너십도 구축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을 다 해내려면 실행계획이 필요했다. 그러나 계획이 있든 없든 실제 성공률은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계획 덕분에 사업이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는 있었겠지만 성공률이 높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획이 아닌 계획

 

1990~2000년대 학생들에게 친숙한 전통적 사업계획은 이제 다른 방법에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대안도 딱히 더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앨런 글리슨Alan Gleeson과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가 사업계획에모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을 뿐, 별반 차이가 없다. 알렉산더 오스터왈더와 예스 피그누어는 <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   >에서, 예비 창업자가 꿈꾸는 회사를 시각화해 캔버스에 그려보는 프로세스를 제안한다. 두 사람은 이 프로세스를 정해진 필수 요소를 조화롭게 잘 배치해서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에 비유한다. 스타트업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인프라, 고객 니즈, 유통채널, 자금이 있다. 한편 빌 올렛의 <   MIT 스타트업 바이블   > 24단계 창업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한다. 이 프로세스를 신중히 진행하면 성공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올렛은 말한다. 결국 이런 새로운 시도 중 어느 것도 계획 세우기 프로세스의 선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어떤 과정의 앞에는 반드시 한두 단계가 선행해야 한다.

 

건즈, 스콧, 스턴이 주창하는 창업가 전략 나침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 사람은 스타트업의 시장 진출 전략에는 자신의 지식재산 사수하기, 경쟁자 파괴하기, 기존 가치사슬에 편입되기, 새로운 가치사슬 만들기 전략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생기업이 이 네 가지 옵션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창업가 혁명이라고 할 만한 시기에 들어선 지 벌써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자들에게 이 이상의 조언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애석하다.

 

직접 부딪치며 배우기

 

본보기가 될 만한 조언을 줄 수 있는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창업가들에게 주어진 대안은 직접 부딪치며 배우는 길뿐이다. 이 방법은 헤겔, 하이데거, 데리다 같은 철학자가 주창한 현상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상학은 기존의 전략적 분석과 비즈니스에 대한 우리의 진선적 사고방식의 기초를 이루는 데카르트의 가정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했다.

 

현상학에 따르면,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지난 데이터를 분석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데이터를 만들고, 자신이 발견한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전 세계 가장 성공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애플도 이런 접근방식을 택했다. 애플은 ACOT(Apple Classrooms of Tomorrow) 프로젝트에서 도전기반학습challenge-based learning이라는 실행을 통한 학습과정을 활용한다. 이런 시행착오 방식은 앱 기반 비즈니스를 창업할 때 특히 효과적이다.

 

실행을 통한 학습은 창업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용적 방법이기도 하다.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인 소비자 반응을 시행착오 없이 예측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제품이 인기를 끌지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안목은 늘 틀리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펀드가 40~5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한 투자가 성공할 확률이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01년 세그웨이가 전국 방송을 통해 소개됐을 때, 전문가들은 도시의 개인용 운송수단의 혁명이라고 입을 모으고, 특히 주차장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질 거라고 예측했다. 투자자들은 이 아이디어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전문가들이인터넷보다 더 대단하다며 호들갑을 떨던 이 혁신제품을 지금은 주로 쇼핑몰 보안경비원들이 타고 다닌다.

 

결국 창업가들은 창업이 자신만이 관리할 수 있는 리스크로 점철돼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의 임무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과거에 내린 결정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나 위험이 나타난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런 기회와 위험을 미리 평가하기는 불가능하다. 스타트업을 세우고 운영하는 일은 결코 하나의 전략적 프레임워크로 단순하게 환원될 수 없다. 회사가 사전 계획대로 원활하게 굴러갈 수 없다는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연쇄창업가 테드 판스워스Ted Farnsworth, 현재 영화관람 월정액 서비스업체 무비패스MoviePass의 모회사 헬리오스 앤드 매더슨Helios and Matheson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판스워스는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신생기업이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신제품을 개발해 세상에 내놓는 거죠. 그러면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제품을 사 줄 고객이 있는가? 그들은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 사업가로서 저는 이 두 질문의 답을 끊임없이 새로 배우고 있답니다.”

 

이 글 첫머리에서 말한, 딜레마에 빠진 가상의 사업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타이탄 스틸Titan Steel을 세계적 금속거래 기업으로 키워낸 마이클 레빈Michael Levin, 1998년 한 디지털 B2B 거래 플랫폼을 선보였다. 이 회사를 창업하기 전에 레빈은 일류 벤처투자자들의 요구에 못 이겨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회사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그는 사업전략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정은 거센 반대에 부딪쳤고, 레빈은 회사를 구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다. 레빈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단언했다. “성공하는 기업을 만들려면 사업계획서를 붙잡고 있을 게 아니라 고객의 발에 맞춰 탱고를 춰야 합니다.”

 

번역: 장효선 / 에디팅: 조영주

 

칼 슈람

칼 슈람(Carl Schramm)은 시러큐스대 특별교수로 재직 중이며, 혁신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벤처 투자를 활발히 하고 있는 슈람은 10년간 카우프만재단 (Kauffman Foundation)의 최고경영자를 지냈다. 최근 <   Burn the Business Plan: What Great Entrepreneurs Really Do   >(Simon & Schuster, 2018)를 펴냈다.

[3]fat start-up, 최소요건 제품을 가급적 빨리 시장에 내놓아 고객 피드백을 얻고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선하는 전략을 취하는 린 스타트업과 달리, 막대한 자본과 자원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 스타트업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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