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6월(합본호) 21세기의 정치 리스크 관리 에이미 지가트(Amy Zegart)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FEATURE RISK MANAGEMENT

21세기의 정치 리스크 관리

오늘날의 위협은 훨씬 복잡해졌지만 해결책은 꼭 그렇지 않다

 

In Brief

문제점

과거에는 정치 리스크를 이해하기 쉬웠다. 정치 리스크라 하면 주로 기업의 자산을 압수하는 독재자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점차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개인, 도시 조례를 정하는 지방공무원, 트럭 폭탄을 터뜨리는 테러리스트 등 다른 주체들로부터 정치 리스크가 비롯되고 있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

우선 탈냉전으로 초강대국의 경쟁구도가 무너지면서 지정학적 풍경이 훨씬 혼란스럽고 불확실해졌다. 둘째로 국제 공급망의 길이가 늘어나고 더 의존적인 형태로 변하면서, 기업이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의 혼란에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됐다.

 

또 새 기술의 등장으로 사회운동은 더 이상 사회운동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3자들도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으로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 기업에 심각한 정치적 피해를 줄 수 있다.

 

해결책

리스크 관리에 뛰어난 조직은 정치 리스크의 이해, 분석, 완화, 대응이라는 네 가지 핵심역량을 갖추고 있다. 네 영역마다 관리자들은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각 영역의 약점을 찾고 경쟁력을 높이며 위험을 완화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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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가브리엘라 코퍼스웨이트Gabriela Cowperthwaite는 그녀의 인생을 바꿀 뉴스기사를 접했다. 올랜도의 해양수족관 시월드SeaWorld에서 쇼 도중 범고래가 조련사를 공격해 죽인 사건을 다룬 기사였다. 로스앤젤레스의 영화제작자이며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샌디에이고 시월드에 자주 범고래를 보러 다녔던 코퍼스웨이트는 탐사 다큐멘터리블랙피시Blackfish’ 제작에 이후 2년을 쏟아부었다. 이 영화는 테마파크에서 범고래를 대하는 방식이 동물과 인간조련사 모두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폭로했다. 제작비는 단 76000달러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번에 입소문을 타고 유명인들과 동물보호단체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대중은 시월드에 거센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후원을 끊었고 규제기관에서는 시월드의 안전조치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으며 입법자들은 범고래 감금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블랙피시가 개봉된 지 18개월 만에 시월드의 주가가 60%나 곤두박질치자 CEO 짐 애치슨Jim Atchison은 결국 사퇴를 발표했다. 2018년인 지금도 시월드의 주가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이 모두가 범고래에 대한 기사를 읽은 한 여성이 저예산 영화를 제작한 탓이었다.

 

최근까지의 정치 리스크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편이었다. 정치 리스크라 하면 주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Hugo Chavez처럼 기업의 자산을 압수하는 독재자와 관련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강제로 자산을 빼앗는 등의 행동을 단행하는 지도자가 과거보다 훨씬 적다. 여전히 정부가 비즈니스 환경의 중요한 결정권자로 남기는 해도 국내외의 커다란 정치 리스크가 이제는 스마트폰을 손에 든 개인, 도시 조례를 정하는 지방공무원, 트럭 폭탄을 터뜨리는 테러리스트, 국제 제재를 관리하는 유엔사무관 등 다른 주체들로부터 비롯된다. 광범위한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아찔한 속도로 세계의 비즈니스에 영향을 주고 있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반중국 시위는 미국 의류시장의 품절 사태로 이어진다. 시리아 내전은 유럽의 난민문제와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위기감을 높여 관광산업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북한의 독재자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에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치 리스크의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정치 리스크의 열 가지 유형

 

아래 표에서 우리는 21세기의 기업이 맞닥뜨릴 수 있는 정치 리스크의 주요 유형을 정리했다. 정치 리스크에 대한 우리의 정의는정부 공무원의 행위가 기업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라는 일반적인 정의에 비해 범위가 훨씬 넓다. 우리가 보는 정치 리스크에는 다양한 개인과 단체가 취하는 정치적 행동의 영향이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는 기후변화와 순수한 경제적 리스크는 제외하기로 했다. 기후변화는 지구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지만 별개의 리스크 카테고리보다는 리스크를 가중하는 요인의 하나로 본다. 기후변화는 우리의 리스트에서 다루는 리스크인 사회적 행동, 새 규정, 내전과 국가간 분쟁 등의 정치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대부분의 비즈니스에서는 경제적 리스크를 항상 고려하기 때문에 이 리스트에서 인플레이션, 노동시장, 성장률, 일인당 소득 등의 경제적 리스크는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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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입장에서 21세기의 정치 리스크란 근본적으로 정치적 행동이 비즈니스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큰 영향을 주는 현상을 뜻한다. 이는정치 리스크라고 단순히 말하고 인식하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하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정의(定義). 수도, 군사 병영, 정당 당사 같은 일반적인 진원지 밖에서 리스크를 만드는 사람들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우리는정부의 행동이 아닌정치적 행동이라는 말을 선택했다. 요즘은 비즈니스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행동이 집안, 길거리, 클라우드, 채팅방, 기숙사,회사 중역들이 모여 있는 이사회 회의실, 동네 술집, 정상회담 중 비공식 접촉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다. 경쟁우위를 차지하려는 기업이라면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정치 행위자들의 잠재적 영향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개별적으로 따져보면 21세기의 정치 리스크들은 일어날 확률이 낮은 사건처럼 보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미국인이라면 외국 태생의 테러리스트에게 죽임을 당할 확률은 약 45000분의 1이다. 폭염으로 사망하거나 음식이 목에 걸려 질식사할 확률보다 훨씬 낮다. ‘블랙피시와 달리 대부분의 사회운동 다큐멘터리는 입소문을 타거나 돌풍을 일으키지 않는다. 누적적 리스크는 조금 다른 문제다. 이는 흔히 과소평가된다. 한 가지 정치 리스크가 내일 당장 특정 도시에서 어떤 회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을지 몰라도 일정 기간 안에 임의의 정치 리스크가 세상 임의의 장소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놀랄 만큼 높다. 희귀사건 여러 개를 더하면 총 발생확률은 결국 그렇게 낮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정치적 리스크는 복잡해진 반면 그것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여전히 꽤 간단하다. 조직에서는 기본만 잘 지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기존 우수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의 리더십 경험과 연구결과를 활용해 리스크 관리에 뛰어난 조직의 네 가지 핵심 역량을 정리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불안감이 증가하는 시대에 관리자가 조직의 대처능력에서 부족한 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질문들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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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리스크 이면의 새로운 역학

 

탈냉전 이후의 극적인 정치 변화, 공급망 혁신, 기술 혁명이라는 세 가지 메가트렌드가 정치 리스크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정치. 오늘날의 기업들은 근대역사에서 가장 복잡한 국제 정치환경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의 경쟁구도로 적국과 동맹국을 비교적 명확하게 나눌 수 있었다. 통상 정치와 안보 역시 정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었다. 세계는 대체로 서구 자본주의 시장과 소비에트연합의 통제경제로 나뉘었다. 군비제한협정에는 소련도 관여했지만 국제통상협상에는 빠졌다. 뜨는 국가, 지는 국가, 실패한 국가, 불량 국가, 그리고 테러리스트 집단이나 사이버 범죄조직 같은 비국가 행위자들이 뒤섞인 오늘날의 환경은 훨씬 혼잡스럽고 불확실하다. 그리고 안보는 더 이상 안보 문제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국제경제 문제는 종종 안보정책, 정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국무장관이던 시절 콘돌리자는 아랍에미리트 정부 소유의 우수한 부두관리회사 두바이포츠월드Dubai Ports World가 대중의 거센 반발에 못 이겨 미국 내 선박터미널 운영권을 미국 기업에 넘기는 과정을 절망적으로 지켜봐야 했다.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의 굳건한 동맹국이었고 미국 정부의 철저한 조사로도 거래와 관련한 안보상의 우려점을 전혀 찾지 못했지만 9·11테러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은아랍항구라는 단어만 듣고도 두바이포츠월드의 미국 내 운영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세계에서 가장 확고한 자유시장경제 국가인 미국에서 말이다.

 

공급망. 공급망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기업에 엄청난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이제는 작은 규모의 기업들까지도 해외의 낮은 임금, 저렴한 운송비, 효율적인 재고관리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공급망 혁명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국제 공급망이 길어지고 더 의존적인 형태로 변하면서 기업이 먼 지역의 혼란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기업이 이윤, 맞춤화, 속도 개선을 위해 해외 공급자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과정이 정치적 행위의 방해를 받을 공산이 커졌다. 중국이 2014년에 연안 석유시추시설을 베트남의 배타적경제수역으로 옮기자 베트남에서는 반중국 시위가 터져 나왔다. 의류와 완구의 세계 최대 도매업체인 리앤펑Li & Feng의 공급자들은 꼬박 한 주 동안 베트남공장의 문을 닫아야 했고 미국으로의 제품 배송은 지체됐다. 동남아시아의 영해 분쟁으로 시작된 갈등 때문에 미국 도시의 상점 진열대가 순식간에 텅텅 비는 상황이 발생했다.

기술.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인터넷 역시 21세기의 정치환경을 바꾸고 있다. 세계 인구의 48%는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다. 2020년에는 수돗물이나 전기를 공급받는 인구보다 스마트폰을 소유한 인구가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이 집단행동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자 뜻이 같은 사람들이 엄청난 지역적 거리를 극복하고 공동의 대의에 쉽게 힘을 모을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사회운동은 더 이상 사회운동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상에서는 제3자들도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을 올려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2017 4 9일 켄터키 주 루이스빌행 항공권을 초과 판매한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은 승객 네 명을 추려내기로 결정했지만 그 가운데 한 명인 데이비드 다오David Dao는 비행기에서 내리기를 거부했다. 승객들은 다오가 좌석에서 무지막지하게 끌려나가는 장면을 촬영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이틀 뒤에 유나이티드항공 주식의 주주 가치는 25500만 달러 하락했고 분석가들은 중국시장이 이 항공사에 가져올 파문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 소셜미디어 댓글에는 다오가 아시아인이라서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치 리스크 프레임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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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에서 기업이 정치 리스크를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일부 기업은 필요할 때 분석과 조언을 해줄 컨설턴트를 고용한다. 또 사내 부서에 크게 의존하는 기업도 있다. 다수는 혼합접근법을 사용한다. 어디에나 꼭 맞는 전천후 모델은 없기에 우리는 대부분의 회사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조치를 제안하는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이 프레임워크는 리스크의 이해, 리스크 분석, 제거할 수 없는 리스크의 완화, 효과적인 위기 관리와 지속적인 학습을 돕는 대응능력 확보라는 네 가지 역량에 초점을 맞춘다.

 

프레임워크의 단계마다 중요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직의 누구든지 활용할 수 있는 세 가지 안내 길잡이 질문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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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이해하기

 

우리 조직의 정치 리스크 성향은 무엇인가?

 

개인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업은 리스크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기업의 리스크 대응방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주요 투자의 시간적 지평time horizon, 대안투자의 가능 여부, 투자 회수의 용이성, 소비자의 가시성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석유와 가스 등의 시추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대체로 먼 국가에 장기 투자를 하는데 그중 상당 비율의 국가가 독재정권하에서 사회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이런 기업들의 핵심 자산은 쉽게 옮길 수도 없다. 그런 이유로 석유와 가스회사는 상당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반면 호텔체인과 테마파크 같은 고객 대면산업은 평판 손상에 특히 취약하며 그 결과 대체로 낮은 리스크 감수 성향을 갖는다.

 

리스크 성향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존재하는가?

 

훌륭한 기업에서 정치 리스크는 이사회부터 매장 사원에 이르는 모든 구성원의 관심사다. 물론 조직의 구성원 전원이 비슷한 견해를 가질 수는 없다. 변호사나 회계사가 리스크를 대하는 방식은 마케터나 제품 개발자와 다르므로 그런 차이를 잘 파악하고 해결할 필요가 있다. 디즈니에서 공동의 이해는 (미키 마우스가 상징이기에) “쥐는 절대 건드리지 못한다였다. 디즈니는 정치 리스크 감수 성향을 기본적으로 제로에 가깝게 정한다.

 

2006년에 레고그룹은 전략적 리스크 관리역량을 형성했다. 이는 리스크에 대한 구성원들의 견해를 조율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런 시도는 회사에 25년을 몸담은 베테랑 엔지니어이며 자칭 레고의프로 미치광이라는 한스 래쇠가 이끌었다. 그는 모든 신임 관리자를 대상으로 리스크 교육을 실시하고, 리스크 성향을 결정할 때 이사진을 포함한 주요 비즈니스 리더를 참여시키고, 리스크를 감지하고, 사업계획에 리스크 평가와 완화 조치를 포함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과정을 마련했다. 래쇠의 팀은 해마다 경영진과 이사회에서 회사가 리스크에 노출된 정도를 추정할 수 있도록리스크에 처한 순익net earnings at risk’이라는 지표까지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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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점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맹점을 줄이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 주요 투자자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미래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고 믿는 것이 가장 큰 실수입니다. 절대 그럴 리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의 회사는 모든 관계자에게만약 우리가 틀렸다면?’이라는 단순한 질문을 몇 번이고 던지도록 교육한다. 시나리오 기법, 모의 전쟁연습 등의 방법 역시 회사가 숨겨진 리스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수단은 달라도 목표는 동일하다. 바로 창의적 사고를 기르고 집단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2단계: 분석

당면한 정치 리스크에 대해 좋은 정보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한 소리지만 리스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정보를 찾아야 한다. 기업은 이런 일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설적 CEO 잭 웰치가 2001년에 전자기기 제조업체 허니웰 인터내셔널Honeywell International의 인수를 시도할 때 일이다. 합병건은 미국 법무부 검토를 순조롭게 통과했고 웰치는 EU의 승인도 곧 뒤따르리라고 예상됐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유럽의 규제기관들은 독점금지 문제에서 미국 정책당국과 철학이 달랐다. 유럽에서는 소비자가 아닌 경쟁자의 잠재적 영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과거에는 유럽의 규제기관에서 미국의 대규모 합병을 반대한 적이 없지만 겨우 4년 전에 보잉과 맥도넬 더글러스항공사의 합병이 거의 무산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웰치와 허니웰의 CEO 마이클 본시그노어Michael Bonsignore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급급한 나머지 브뤼셀에 있는 유럽 반독점 관련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없었다. 합병이 물 건너갔음이 명백해지자 웰치는 이렇게 심경을 밝혔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어떻게 철저한 분석을 할 수 있을까?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분석이야 말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방법이라고 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훌륭한 리스크 분석은 구성원들이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추정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검증해 조직이 미래에 적절히 대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선 조직의 가장 귀중한 자산에는 무엇이 있으며 가장 취약한 부분은 어디인지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 목록이 한 곳으로 수렴할수록 즉 귀중한 자산과 취약한 부분이 한 곳으로 집중될수록 기업의 정치 리스크는 높아진다. 시월드가 대중의 비난에 특히 큰 타격을 입었던 이유는 조련된 범고래가 회사의 브랜드에 워낙 중요했기 때문이다.

 

취약성을 정확히 정량적으로 가늠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관리자가 불확실성을 줄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때 레드팀red team(조직에 맞서는 역할이나 조직과 반대되는 관점을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팀)부터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무작위 추출된 난수를 이용해 결과의 범위와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방법)에 이르는 다양한 도구가 도움이 된다. 결국 최종목표는 주요 원인과 가능성을 이해하는 방법을 개발해 당황스러운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는 것이다.

 

페덱스는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 기업에서는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다음 번에 유럽에서 어떤 이유로 트럭 운전사 파업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육상수송이 지연되기 시작하는 지점은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대체 계획을 가동해야겠지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모든 소속 호텔에 보안경보 수준을 다섯 단계로 분류한 컬러 코드 보안경보 시스템을 도입했고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각 호텔의 단계를 높일지 낮출지 판단한다. 메리어트 리스크 팀도 다음 번에 테러리스트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공격을 해올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 시스템의 목적은 준비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다.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 변화를 호텔 관리자에게 통지하고, 위협 단계별로 수행해야 할 임무를 정해 두고, 임무의 이행 여부를 감사해 모든 구성원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숙지할 수 있게 한다.

 

사업상의 결정에 정치 리스크 분석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맥킨지가 2016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리스크 분석을 공식 절차에 포함시키는 고위관리자는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전략지정학적geostrategic 리스크에 대처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즉석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레고는보트 찾기boat spotting’라는 방법을 쓴다. 잠재적 리스크와 기회를 항상 살펴 대처해야 할 타이밍(보트)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 회사는 구글 트렌드 검색데이터 분석과 시나리오 기법을 비롯한 다양한 리스크 평가도구를 적극 활용하지만 접근수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용목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투자를 방어하기 위해 관리자들에게 엄격한 정치 리스크 분석을 활용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사결정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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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 완화

이미 밝혀진 정치적 리스크에 덜 노출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요 자산 분산하기(흔한 말로, 달걀을 전부 한 바구니에 담지 않기), 공급망에서 위기대처 능력을 기르고 여유시간 확보하기, 업계의 다른 관계자와 협력해 정치 리스크 평가와 완화전략 공유하기라는 세 가지 전략은 항상 유용하다. 흔히 간과되는 세 번째 전략은 서비스업계에서 주로 활용됐다. 2005년에 여러 명의 자살폭탄 테러범이 요르단 암만의 하얏트, 래디슨, 데이즈인호텔을 동시에 공격했다. 폭탄테러의 여파 속에서 메리어트의 국제 안전과 보안 분야를 담당하는 부사장 앨런 올롭Alan Orlob은 정보와 우수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경쟁업체와 더불어 호텔보안작업그룹을 결성하고 국무부 해외안보 자문위원회Overseas Security Advisory Council의 지원을 받았다.

 

시의 적절한 경고와 조치를 위해 시스템과 대응팀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는가?

 

정치 리스크를 잘 관리하는 기업은 정부의 경보나 업계의 분기별 보고서만 느긋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올바른 상황인식을 위해 다양한 출처를 끊임없이 살펴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효과적인 경보시스템을 마련한다. 또 특정 상태가 되면 누구나 자동으로 반응할 수 있는 행동지침을 정해 둔다. 이 행동지침에서 누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혀 두면 매번 새롭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국제적인 정치 리스크 관리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은 대개 내부에 위협평가부서를 만들고 전직 정보, 사법기관 출신 전문가를 초빙해 실시간으로 정치적 움직임의 전개 상황을 추적한다. 로열 캐리비언 인터내셔널Royal Caribbean International의 리스크 관리팀은 FBI 근무경력 25년의 베테랑이 이끌고 있다. 올롭은 24년간 미 육군 특수부대에서 일했다. 정유회사 셰브런Chevron 소속팀은 정부보안서비스 경력 도합 92년의 국제 리스크 전문가 여덟 명으로 꾸려졌다. 이들 기업을 비롯한 모범적인 회사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시스템 개발을 전담하는 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

 

나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피해를 제한할 수 있을까?

 

관리자는 위기가 전개되기 한참 전에 잠재적 피해를 최소화할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위기상황에서는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지만 관계를 형성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전직 미 국무장관 조지 슐츠George Shultz는 훌륭한 외교를 정원 가꾸기에 비교하곤 했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위해 뭔가 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과의 관계부터 가꿔야 한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4단계: 대응

우리는 실패를 간신히 모면한 경험을 자산화하고 있는가?

 

모든 조직은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변변치 못한 결과로 끝날 뻔하다가 행운에 의해 성공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리더는 시스템의 취약성 때문에 실패하기 직전까지 갔는데도 시스템의 탄력성 덕분에 실패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성향을 반드시 이해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비극이 좋은 예다. 재앙이 발생하기 전 왕복비행 과정에서 특정고무링O-ring’ 패킹이 부식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패킹이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기에 NASA의 관리자들은 실패가 일어날 리 없다는 잘못된 확신을 가져버렸다.

 

우리는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는가?

 

훌륭한 위기관리는 상황 판단하기, 대응팀 가동하기, 가치로 리드하기, 자신의 입장 설명하기(정직하게!), 불길에 부채질하지 않기의 다섯 단계로 요약될 수 있다. 위기는 대체로 다양한 청중과 관련돼 있다. 소비자, 투자자, 기자, 활동가, 선출직 공무원, 정부 규제기관, 법 집행기관 등이 그 예다. 각 청중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새로운 리스크를 만들거나 상황을 악화시킨다. 따라서 이해관계 당사자 사이의 역학관계 역시 반드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콘돌리자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역할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전투기가 국제공역에서 미국 정찰기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국 측 전투기 조종사는 사망하고 미국 정찰기는 중국에 비상착륙했다. 탑승원들이 중국에 억류되자 양국 정부는 석방 조건을 협상해야 했다. 부시 대통령의 목표는 분명했다.

 

‘정찰기 승무원은 석방돼야 한다. 미국은 공해에서 합법적으로 행한 정찰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는 유지돼야 한다.’

 

양국 어느 쪽도 상황이 악화되기를 원치 않았지만 다수의 청중이 관여하면서 협상은 복잡한 국면에 빠졌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 입장에서 이런 소리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중국, 당신들 이쪽 편 말만 듣고 있네요. 의회, 당신들은 저쪽 편 말만 듣고 있네요.” 콘돌리자는 신중한 대응을 위해 위기 팀을 하루에 두 차례씩 소집했다. 그런 노력에는 양국 정부가 문제해결에 애쓰고 있지만 새로운 발언으로 긴장을 더 높이는 상황을 예방하는 의사소통전략 마련이 포함됐다. 결국 승무원은 석방됐고 중국은 주중 미 대사 조지프 프루어Joseph Prueher를 통해 사고에 대한 사과 없이 조종사의 죽음에 유감을 표시하는 서한을 전달받았다.

 

우리는 지속적인 학습을 위한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있는가?

 

최고의 위기 대응 시스템에서는 위기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재앙이 닥치기 전에 구성원을 충분히 학습시키는 피드백 회로를 도입한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행하는 기업은 드물다. 사실 우리가 아는 단체 중 지속적인 학습에 가장 뛰어난 집단은 일류 미식축구팀이다. 미식축구에서는 어디서든 실수가 나타날 수 있고 성공과 실패가 명확히 구분된다. 엘리트 코치들은 모든 경기를 철저히 분석해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밝힌다. 경기 녹화물을 검토하고, 경기 중간중간에 전략을 수정하며, 더 훌륭한 경기를 위해 선수 배치를 변경한다.

 

스탠퍼드 팀과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를 이끌었고 지금은 미시간대에서 활동 중인 짐 하보Jim Harbaugh는 단 몇 시즌 만에 지는 팀을 이기는 팀으로 바꾸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그는 이런 말을 즐겨 한다. “실력은 점점 나아지거나 점점 나빠지거나 둘 중 하나다. 절대 같은 상태로 머무르는 법은 없다.” 기업에서 지속적인 학습 메커니즘을 마련할 때는 반드시 머리와 심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즉 앞으로 계속할 일, 그만둘 일, 새로 시작할 일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고, 모든 구성원이 여정에 참가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접근법을 이용해야 한다.

 

비즈니스계를 뒤흔든 5대 글로벌 쇼크

 

세계 경제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건은 심심찮게 발생한다. 이런외부 충격은 대체로 예상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치 리스크 관리에 전문성을 키운 조직은 그 영향을 완화할 수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정치계와 경제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큰 사건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2001 9 11일에 발생한 테러리스트의 습격이다.

 

이 사건은 미국이 강대국뿐만 아니라 힘 없고 통제가 불가능한 지역의 위협에도 시달리게 됐음을 나타낸다. 근대국가 체제의 시작으로 기록된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 이후로 강대국들은 다른 강대국이 가하는 위협을 방어하는 데만 주력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다.

 

두 번째로 큰 충격을 가져온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긴축 조치와 새로운 규제의 형태로 정부 개입을 강화했다. 또 이 사건은 국제경제가 개인의 행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였고 포퓰리즘 역풍을 불러왔다. 세계 금융시스템 때문에 집을 잃는다면 국제경제는 개인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아랍의 봄Arab Spring’과 그에 따른 중동사회 전체의 불안은 이 지역의 정부와 기업에 큰 부담을 안기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내의 국가 체계가 그대로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를 낳았다. 오스만제국 말기에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가 임의로 정한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터키, 이라크, 시리아, 페르시아만 연안 제국의 국경은 시아, 수니, 쿠르드족이 집중된 지역들을 갈라놓았다. 시리아 내전으로 600만에 가까운 인구가 추방당하면서 피신처를 찾아 이동한 이웃나라에 부담을 안겨주자 상황은 한결 복잡해졌다. 이 난민위기가 유럽에 준 영향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이며 EU도 더 이상 중동의 위험으로부터 그 영토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인식도 강해졌다.

 

우리는 네 번째 충격을강대국의 횡포라 부른다. 중국과 러시아 정부는 갈수록 막무가내로 행동하면서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국의 경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대한 해묵은 영토분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끝으로 원주민보호주의, 포퓰리즘, 보호주의, 고립주의가 귀환하고 있다. 세계화는 수백만 명을 빈곤에서 건졌고 수백만 명의 부를 늘려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 경제에서 경쟁할 기술이 부족한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들었다. 미국 고객을 상대하는 인도의 콜센터 근무자들은 뉴델리의 노동자들에게 기회인 동시에 미국 노동자에겐 위협의 상징이 됐다. 2016년의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출(미국에서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힌 최초의 사례)은 세계화의 이런 부정적 영향에서 나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나 버니 샌더스, 심지어 전직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중 어떤 후보도 자유무역을 옹호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이 다섯 가지 주요 사건은 국제질서에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국가간 그리고 국내의 정치역학 관계를 변화시키는 한편 시장 전체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 리스크 관리 사례: 로열 캐리비언의 아이티 위기

 

기업의 우수사례들을 살펴보면 잠재적 정치 리스크를 이해하고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로열 캐리비언이 좋은 예다.

 

2010 1 12, 진도 7.0의 지진이 아이티를 강타해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사흘 후에인디펜던스 오브 더 시즈Independence of the Seas’라는 이름의 로열 캐리비언 소속 크루즈선이 아이티의 라바디 항구에 정박해 재난의 중심지인 포르토프랭스부터 불과 140km 떨어진 회사 소유 해변에 승객 3000명을 풀어 수영과 선탠을 즐기게 했다. 대중의 반응은 신랄했다. 뉴욕포스트는악마의 배Ship of Ghouls’라는 헤드라인으로 관광객들이 열악한 상태의 임시천막에서 지내는 아이티인들을 옆에 둔 채 제트스키를 타고 럼을 마셔댔다고 비난했다.

 

로열 캐리비언은블랙피시발표 이후 시월드가 맞은 역풍만큼이나 극적인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 유람선회사에 대한 여론은 머잖아 방향이 바뀌었다. 며칠 만에 유명 언론사들은 로열 캐리비언이 사실은 아이티 정부의 요구에 따라 유람선을 운항했으며 이 나라에 절실히 필요한 경제원조를 제공했음을 강조하는 기사를 실었다. 얼마 후에 웹사이트크루즈 크리틱Cruise Critic’ 4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분의 2가 라바디행 크루즈 여행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한 이 회사의 결정을 지지했다.

 

로열 캐리비언이 리스크 상황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이유를 논리적 설득력과 위기 도중의 적극적인 홍보 노력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그것들도 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 회사는 지진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정치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이티에서 인위적 정치 리스크에 대처할 탄탄한 역량을 갖췄기에 자연 재해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이 유람선회사는 1980년대부터 아이티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 나라가 정치폭력, 불안, 부패, 빈곤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육로로는 라바디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부와 차단된 한적한 지역을 찾는 것이 첫 단계였다. 다음 단계로 로열 캐리비언은 지역주민들과의 유대감 형성에 노력했다. 이를 테면 지역 상인들에게 배에서 내린 승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할 기회를 주어 주민 고용을 창출했다. 또 아이티 정부에 승객 1인마다 세금을 납부했고 아이티의 공무원, NGO, 싱크탱크, 유엔 기구와 국가적, 국제적 차원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2010년 지진이 발생했을 무렵 이 회사는 지역주민의 이해와 신뢰관계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였다. 회사 관리자들은 정부 관료들과 상의해 사전에 계획된 대로 라바디에 정박하기로 합의했다. 또 이 회사는 100만 달러를 원조하고 자사 선박으로 재난구호물자를 운송했으며 아이티의 모든 해안 관광코스에 지진구호품을 전달하는 한편 추가 지원을 위해 유명 자선단체와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로열 캐리비언이 언론의 공격을 받자 개인 지지자와 NGO, 학계 등 전문가들이 이 회사를 두둔하고 나섰다. 아이티 정부는 유엔에 특사를 파견해 아이티 관광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회사 보도자료 인용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로열 캐리비언이 지진이 발생한 후에야 갑자기 정치 리스크 관리를 시작한 것이 아니듯 언론의 분노가 잦아들었다고 노력을 멈춘 것도 아니었다. 지진 발생 6개월 후 이 회사는 아이티에 새 학교를 짓고 다른 세 개 회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주택과 주요 인프라 건설자재를 공급하고, 관광객들을 해안지역 봉사활동에 참가시키는자원봉사 관광옵션을 내놨다.

 

로열 캐리비언은 지금도 아이티에서 정치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2016년에 이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연기되고 관광에 반대하는 정서가 고조되자 이 회사는 한때 유람선을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 덕분에 아이티는 30년 이상 로열 캐리비언의 소중한 관광 목적지로 남아 있다.

 

훌륭한 대처방안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면 로열 캐리비언의 평판에 닥친 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이 회사는 아이티에서 마주칠 수 있는 정치 리스크를 진작부터 이해하고 분석해 첫 크루즈선이 이 나라의 해안에 정박하기 전에 다양한 리스크 저감 대책을 마련해뒀다. 끝으로 로열 캐리비언의 대응 계획은 위로부터의 확고한 리더십에 따라 충실히 집행됐다. 크루즈 라인의 회장이자 최고운영책임자인 애덤 골드스테인Adam Goldstein은 개인 블로그에 회사가 결정을 내린 과정, 일간 회의록, 언론보도에 대한 대응, 구호물자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충실히 업데이트해 사람들이 위기관리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기업 대변인들은 재해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아이티 복구에 공헌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메시지를 부지런히 내놨다. 로열 캐리비언이 정치 리스크 관리에 투입한 모든 열정적인 노력은 지진의 후유증 속에서 결실을 맺었다.

 

몇 해 전, 우리가 스탠퍼드에서 정치 리스크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몇 가지 미래 동향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은 우리 두 사람에게도 큰 놀라움을 줬다. 실지 회복에 관심을 갖고 이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러시아가 동유럽의 현재 영토경계에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는 예측은 했지만 크림반도를 합병할 줄은 몰랐다. EU가 위기를 맞으리라고는 생각했어도 브렉시트는 예상 밖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필리핀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같은 스트롱맨이 권력을 잡더니 서방세계를 등지고 중국 편으로 돌아설 줄은 누가 알았을까?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 리스크 관리를 순전히 어림짐작에 기댈 필요는 없다. 리스크가 어디서 나타날지 정확히 알아야만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 일류 운동선수들이 실력을 키우기 위해 훈련을 받고 체력을 단련하듯이 우리는 관리자들이 우리의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정치 리스크 관리 근육을 키우기를 희망한다.

 

결국 가장 우수한 조직은 세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진다. 곧 정치 리스크를 진지하게 인식하고, 정치 리스크에 체계적으로 겸손하게 접근하며,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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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   Political Risk: How Businesses and Organization Can Anticipate Global Insecurity   > 내용을 발췌했다. (Twelve, 2018).

 

번역: 길효정 / 에디팅: 고승연

 

콘돌리자 라이스, 에이미 지가트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는 스탠퍼드경영대학원 정치경제학 교수이자 후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스탠퍼드대 정치학과 교수다. 2001~2005년에 국가안보보좌관을, 2005~2009년에 제66대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다. 에이미 지가트(Amy Zegart)는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의 공동소장이자 선임연구원, 후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과거에 맥킨지 경영컨설턴트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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