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6월(합본호) 나르시시스트 가해자에 대해 침묵으로 용인하지 마라 이경민

Commentary on the big idea

나르시시스트 가해자에 대해 침묵으로 용인하지 마라

 -Commentary on the big idea 보기 전 the big idea 기사 먼저 보기
     > 미투 운동, 일터를 바꾸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촉발된 미투 운동이 한국으로도 이어졌다. 문학계, 연극계, 법조계, 학계, 종교계, 의료계, 기업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투 운동의 열풍이 뜨겁다. 한편으로는 기업 일각에서 다른 움직임도 감지된다. 여성직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회피를 자구책으로 언급하는 남성직원들이 생기고(‘펜스 룰’) 과거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이 현재의 기준에서 미투에 해당하는지 걱정하며 HR에 문의하는 직원들도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의 원활한 소통도 어려운데, 여기에 더해 여성직원들과는 어떤 주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 하는 임원들도 있다. 한편에서는 미투 피해자들에 대해왜 이제야 말을 했는가또는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표현하여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HBR 이번 호에 실린 아티클은 한국기업에도 꼭 필요한, 시의 적절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미투를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심리를 각 상황과 단계별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의 조직문화의 개선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첫 번째로 살펴봐야 할 점은 가해자의 심리다. 이번 HBR 아티클에서 필자들은 전염병 예방을 위한 공공보건 모델에 기초한 3 단계 접근법을 제시했다. 정신분석적으로 볼 때, 각 단계에 따라 가해자의 심리가 다를 수 있다.

 

1단계와 2단계에 걸친 가해자는 부적절한 표현, 농담, 발언, 몸짓 등을 보인다. 이 경우 가해자 상당수는 자신들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의 성적 농담이나 표현이 상대에게 어떤 수치감이나 소외감을 들게 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농담을 하는 자신이 성적인 주제도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착각하기도 한다. 또는 그런 행동을 상대와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유머나 자신의 센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전형적으로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에 젖어 있는 남성들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예뻐서 예쁘다고 하는 것인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다. 그런 말에 화를 내거나 불편해 하는 상대가 예민하고 사회적으로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성희롱은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모든 언행을 지칭한다. 자신의 의도가 어떠한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가 성희롱의 성립 조건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말이 자신의 입장에서는 친밀감의 표현이고, 동생 같고 가족 같아서 편하게 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듣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 폭력을 생각해 보면 쉽다. 학교에서 왕따를 시키고 괴롭히는 애들에게 왜 그런 나쁜 행동을 하는지 물어보면 장난이었다고,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상대가 폭력적으로 느끼고 불편해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장난이거나 친하기 위한 활동이 아닌 것이다.

 

두 번째로, 2단계와 3단계의 성희롱을 하는 가해자의 심리를 살펴보자. 이 단계는 반복적인 성적 접근이나 보복, 모욕적이거나 상대방을 조종하는 행위, 성폭력, 강간 등을 포함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가해자들은 일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유발하는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리고 그런 이면에는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는 비뚤어진 특권의식이 있다. 특히 조직 내에서 고성과자들이 이런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나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런 행동도 상대에게 그리고 조직 내에서 제지받지 않을 것이라는 우월감이 있다.

 

성공한 경영자, 교수, 의사, 정치인 중에 이런 특권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성적 착취로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단발성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지속되는 데에는 주변의 침묵이 일조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늘 별탈 없이 넘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가해자들은 도덕규범 위에 자신이 있다는 잘못된 특권의식까지 갖게 된다. 이런 가해자들은 11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상대를 성적으로 착취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성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이러한 나르시시스트 가해자들에게는 더 이상 침묵으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을 조직과 주변사람들이 적극 알려야 한다.

세 번째로 살펴볼 대상은 피해자의 심리다. 1단계와 2단계에 걸친 성희롱의 피해를 입은 경우, 피해자도 이를 성희롱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HBR 아티클에 따르면

1년간 36% 의 직원들이 성희롱을 경험했으나 실제 성희롱을 인식한 비율은 여성 11%, 남성 2%라고 한다. 이는 미국에서 조사된 결과인데,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고 여성이 소수인 한국의 직장에서는 이 비율이 더욱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성희롱 문제를 제기할 경우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 찍히거나 향후 커리어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사례도 많다.

 

네 번째, 원치 않는 신체접촉, 성관계 시도, 성폭행 등을 당한 피해자의 심리는 매우 복잡하다. 신체는 위험 상황에서 fight-flight(투쟁-도피) 의 기본 반응 외에 위험이 압도할 때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freeze)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는가, 저항하지 않았는가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신체의 기본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물음이다. 자신의 대응능력을 넘어서 신체 전반을 압도하는 위협을 느끼게 되면 아무런 방어를 하지 못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생각도 행동도 모두 얼어버리게 된다. 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차에 치이는 영화 속 장면과 같은 현상이 실제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비난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기도 한다. ‘그때 내가 더 잘 대응했어야 하는데, 내가 그런 상황을 유발한 것은 아닐까? 내가 문제가 아닐까?’라는 불필요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나는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사람이다또는내가 그 상황을 원했나?’라는 생각까지 하며 괴로움을 겪는 피해자들도 있다. 전쟁이나 끔찍한 재해 같은 트라우마 상황에서 유사한 반응이 목격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관장하는 교감신경이 항상 흥분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매사에 긴장하게 되며 불안과 불면이 삶을 잠식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성폭력과 관련한 상황을 연상시키는 경험을 하면 두려움과 고통을 다시 겪게 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 8년 만에 법조계의 문제를 말하게 되었다는 서지현 검사의 말처럼,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주변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그와 더불어 가해자에 대한 조직의 엄격한 대처가 필요하다.

 

이경민

이경민 이머징 공동대표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에서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디렉터,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을 지냈으며 대한우울조울병학회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최근에는 경영 컨설턴트인 장은지 대표와 같이 기업정신건강 및 리더십/조직개발 컨설팅 전문회사를 만들어 기업을 돕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2018 5-6월(합본호) 다른 아티클 보기

목록보기

무료 열람 가능 아티클 수 0/1 회원가입 | 서비스상품안내